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교육과


학과 소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교육과의 교육 목적은 생물학과 생물교육학을 교육함으로써 기본적으로는 중·고등학교 과학 교사 및 생물 교사를 양성하고, 나아가서 생물학 및 생물교육학의 발전에 이바지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데 있다.

따라서, 본 학과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생물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과학적 사고 방법 및 과학적 태도를 체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생물교육학 전반에 대한 이해와 능력을 갖추어 훌륭한 과학 교사 및 생물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짜여져 있다. 생물학과 생물교육학에 대하여 포괄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실험 실습을 강조한다. 특히, 야외실습·임해실습 등을 통하여 대자연을 직접 생동감 있게 탐구하게 하며 아울러 지도 방법을 체득하게 한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의 참관교육실습과 근무교육실습을 통해 현장감 있고 실제적인 생물 교사로서의 능력을 갖추도록 한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훌륭한 교사 및 우수한 연구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함양된 본 학과의 졸업생들은 바로 교육계로 진출하여 2세 교육에 헌신하거나, 일부 졸업생들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자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갖춘 후 국내외의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학과 연혁

1. 학과 창설 및 그 의의

생물교육과는 1946년 8월 22일자로 미군정령 미군정령 제 102호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에 의하여 서울대학교가 창설되면서 사범대학내에 설치되었다. 우리 나라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제2급 중등과학교사 (생물전공)의 양성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교육과는 우리 나라 전역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생물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수재(秀才)와 재원(才媛)들이 모두 모여 들어 민주교육의 중견인물로서 선봉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생물학과 스승의 도를 배우는 곳이다. 이렇게 지켜온 연륜은 어언 50년, 그 역사는 생물교육과의 존재 의의를 더욱 뚜렷이 빛내 주고 있다.

생물교육과를 졸업하면 생물학을 전공한 이학사로써 대부분 생물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의 생물교사가 된다. 그러므로 졸업생들은 자기전공을 살려 우리나라 교육계의 중진으로 눈부신 공헌을 하고 있다. 졸업생 중에는 중·고등학교 생물 교육에만 만족하지 않고 생물학의 발달에도 나래를 활짝 펴고 생물학의 연구와 생물학자의 양성에 헌신하는 대학교수와 연구원의 수만도 백명을 휠씬 넘게 헤아린다. 우리나라 생물교육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생물학에 관한 기초교육과 생물학의 전문교육기관인 대학 등의 전 생물교육기관에서 명실공이 가장 크게 활약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의 생물학이나 생물교육계의 단일 학과로 평가한다면 당연히 엄지임에 틀림없다.

2. 학과 변천 상황과 약사

1) 태동-창설기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해방이 되자 경성사범학교를 운영하던 일본인 선생들은 모두 물러가고 9월에 장이옥 박사가 경성사범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 때 생물학 교수로 김준민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다. 1946년 8월에 국립서울대학교가 창설되면서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대학교를 통합하여 사범대학은 9개의 단과대학 중 하나의 단과대학으로 설치되었다. 사범대학에는 교육과, 국문과, 영문과, 사회교육과, 수학과, 물리화학과, 생물과, 가정과, 체육과 등 9개 학과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학과로 창설되었다.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신 김준민교수는 생물과의 창시자로 학과에 일을 맡아 교육과정을 짜고 1946년 제 1학기 생물학(4학점)을 강의하셨으며 동물학(4학점) 강사로는 조복성 선생님을 모시어 첫 학사 운영을 개시하였다. 김준민 교수는 1946년 10월 22일자로 발령을 받아 생물과는 단 11명의 전임교수진으로 출발하였다. 이것이 생물교육과의 역사적 태동인 것이다. 학생은 당시의 경성사범학교의 본과 2학년생들 중에서 예과 5년을 수료한 반학생은 사범대학 각 학과의 1학년에 진입시키었고 본과 3학년 졸업생은 원에따라 2학년에 편입시키었다. 그러므로 사범대학은 1, 2학년의 학생으로 개교를 보게 된 것이다. 생물과 학생은 1학년 진입생만을 받을 수 있어 총 4명의 학생으로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당시 네명의 학생은 오계칠 (서강대 교수, 정년퇴임), 이웅직 (정년퇴임, 명예 교수), 주일영 (중대 교수, 정년퇴임)외에 여학생 한명이 끼어 있었다. 1949년 9월 오계칠, 이웅직, 주일영 등 3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사범대학의 소재는 당시 경성사범대학교가 을지로 6가에 있었고 경성여자사범학교는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었는데 사범대학으로 통합되면서 남·여사범학교가 을지로 교사로 합쳐져 처음으로 남여공학을 하게 되었다. 1954년 12월 23일 동대문구 용두동 교사로 옮기기까지 이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생물과는 1947년 유전학을 전공한 이기인 교수 (1947. 1. 1 ~ 1950. 2. 28)를 모셨고 1948년에는 김삼순교수 (1948. 3. 1 ~ 1948. 8. 31), 동물생태학을 전공한 장형두 교수 (1948. 9. 1 ~ 1949. 10. 23)가 부임하셔서 전임교수진을 보완하게 되었고 학생도 4학년 4명, 3학년 3명, 2학년 10명, 1학년 9명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학과 규모를 내 ·외면적으로 갖추게 되었다. 이 때가 바로 1948년의 일이다.

2) 부산-피난기
1950년 6. 25동란의 발발로 전쟁의 와중에서 사범대학은 9. 28(1950)과 1.4후퇴(1951)로 공백기가 도래하였고 서울대학교는 부산영도로 전쟁을 피해 전시연합대학의 천막 교실에서 피난길로 흐터진 학생을 모아 수업을 실시하다가 1951년 10월 20일 부산 대신동 가교사로 옮겨 사범대학이 단독으로 수업을 개시하게 되었다. 생물과는 동란 중의 전시하에서도 최기철교수가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어려운 고비를 넘기었으며 한분만이 남은 생물과 전임교수 진용을 1951년 미생물학을 전공한 이주식 교수와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이덕봉 교수를 보강하였다. 가교사는 부산시 서대신동 3가 130번지에 신축된 판자 교사였다. 이 어려운 속에서도 생물 실험실 하나를 최기철 교수와 이주식 교수가 당시 2학년에 재학중이였던 박한진 선생과 함께 공동작업으로 건축하였다고 한다. 1951년 - 1953년도의 전란 중에서도 학생정원은 생물과가 120명이였다. 입학경쟁율도 완전히 회복되어 3대 1이 넘었다. 1950년도의 졸업식은 전시로 인하여 거행하지 못하고 1951년 9월 29일부로 졸업장만을 수여하였다. 이 때의 생물과 졸업생은 3명에 불과하였다. 1951년도 졸업식은 1952년 4월 26일에 부산대학 강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졸업장은 1952년 3월 31일부로 수여되었는데 생물과 졸업생은 10명에 이르렀다. 1952년도 졸업식은 1953년 3월 28일 부산시내 영선국민학교에서 거행되었으며 9명이 생물과를 졸업하였다. 이상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피난속에서도 외관상으로는 생물과가 위축된 것 같으나 내실은 초창기에 비하면 대단히 발전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수복-정착기
1953년 8월 정부의 서울 환도와 함께 서울대학교의 이전계획에 따라 부산의 가교사에서 을지로 교사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1954년 12월 23일 동대문구 용두동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김준민 교수가 일본에서 귀국하시고 1957년 7월 유전학을 전공한 이웅직 교수가 생물과의 전임 교수 진용에 영입됨으로써 식물생태학, 동물생태학, 미생물학, 유전학 등의 분야에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하였고 신입생의 모집 정원도 35명으로 증원되었으며 여러가지 직업중에서 교직이 가장 사회에서 우대를 받게되어 본 학과의 입학 경쟁율은 10대 1을 상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립대학의 경우 4년제 사범대학을 폐지하고 교육대학원을 설치한다는 교육 개혁의 조치에 따라 1962년 9월 29일 문교부는 사범대학에 가정, 체육, 생물, 사회생활과만을 존속시키고 420명의 학생을 배정하였다. 그러나 이 대학 정비안은 거센 반대에 부딪혀 폐지되고 다시 각 학과가 부활되어 생물과는 과학교육과 내의 생물 전공으로 축소되고 입학 정원도 10명으로 대폭 축소되게 되었다. 1963년 4월 12일자로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이 설치되어 1부(주간)와 2부(야간)로 나누어 생물교육 전공도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었다. 교육 대학원의 생물 교육 전공으로 1974년까지 입학한 학생의 수는 38명이었으나 졸업한 학생은 총 28명이 었다. 한편 1968년도 신입생의 과학교육과 생물 전공의 입학 정원도 20명으로 증원되었다. 1969년 1월에는 식물생리 생태학을 전공하는 장남기 교수가 취임함으로써 5명의 전임 교수 진용을 확보하게 되었다. 생물교육과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대학원 생물교육전공 과정의 탄생과 교수와 학생들의 양적 보완은 사범대학 수난 중의 발전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4) 정착-발전기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관악 캠퍼스로 역사적인 이전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이주식 교수는 자연과학대학 미생물학과로 귀속하게 되어 과학교육과 생물전공의 전임 교수의 수는 4명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1976년 최기철 교수가 정년 퇴임하게 되어 3명의 전임교수진용으로 되었다.

1977년 10월 발생학을 전공한 정해문 교수를 전임 교수진으로 보강하였다. 그러나 1980년 김준민 교수가 정년 퇴임을 하게 되고 1981년 9월 세포학을 전공한 안태인 교수를 모시어 식물유전학, 식물생리생태학, 동물발생학, 세포생물학의 연구와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전임 교수진을 확보하게 되었다.

1981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교육과 생물교육 전공의 주간의 석사 과정이 개설되었고 1982년에는 과학교육과 생물전공이 생물교육과로 독립하게 되었으며 1983년에는 박사과정이 설치되었다. 그 결과 보다 수준 높은 생물교육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하게 되었으며 1988년에는 본과의 제1호 박사가 배출되어 더욱 더 연구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88년 1월에는 생물교육을 전공한 김영수 교수가 부임하게 되어 과학교육과 생물교육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어 생물교육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1989년 8월 이웅직 교수가 정년 퇴임을 하시게 되고 1989년 8월에는 유전공학을 전공한 정구흥 교수를 전임 교수 진용으로 받아 들이게 되어 가일층 현대 생물학의 연구로 과의 분위기를 일신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교육과는 석, 박사 과정을 갖춘 학과로서 생태학, 발생학, 세포생물학, 유전공학의 연구를 교육 내용으로 하여 생물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굴지의 학과로 발전하게 되었다.

3. 학과의 학술적 업적

본 학과에 재직하고 계시는 동안 김준민 교수, 최기철 교수, 이주식 교수, 이웅직 교수, 장남기 교수, 정해문 교수, 안태인 교수, 김영수 교수, 정구흥 교수는 생물학계통의 자기 전공 소속 학회는 물론이고 미국, 일본, 스웨덴 등 외국 학회와의 활동도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학회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가 있다.

(1) 한국생태학회의 창립
일본 동북대학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한 최초의 한국학자로 우리 나라 생태학의 태두이신 김준민 교수는 동물생태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최기철 교수와 함께 한국생태학회를 1976년 5월 29일에 창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2) 한국육수학회의 창립
동물생태학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최기철 교수는 우리 나라 초유의 동물생태학자로 한국육수학회를 1967년 5월 13일에 창립하고 초대회장으로 피선되었다.

(3) 한국행동생물학회의 창립
장남기 교수는 인간의 개체, 개체군 및 사회의 행동 질서와 조절이라는 20여편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Internationla Ecological Conference에서 활약하면서 한국의 행동생물학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1년 12월 14일에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주재하고 초대 회장에 피선되었다.

(4) 한국과학교육학회와 한국생물교육학회에서의 활동
최기철 교수는 한국과학교육학회의 전신인 한국과학교육연구회 제2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장남기 교수는 제7대 한국생물교육학회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에서 과학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맹활약하고 있는 생물교육과 졸업생으로는 조희형 강원대 교수, 본과 재직중인 김영수 교수, 허명 이대 교수, 조정일 전남대 교수가 있으며, 이들은 우리나라 과학교육과 생물교육 분야의 주축 인물들이다. 이에 가세하여 본학과 박사과정 출신 13명이 힘을 합하여 우리나라 생물 교육의 연구와 실천에 선봉이 되고 있다.

(5) 생물학 계통의 학회 활동 상황
김준민 교수는 한국식물학회 회장과 한국생태학회 회장을, 최기철 교수는 한국동물학회회장과 한국육수학회 회장을, 이주식 교수는 한국미생물학회회장을, 장남기 교수는 한국생물교육회장, 한국행동생물학회장, 한국잔디학회회장, 정해문 교수는 한국유전학회회장을 역임하였다. 이웅직 교수는 한국식물학회 부회장과 한국유전학회 부회장을, 장남기 교수는 한국생태학회 부회장을 하였다. 안태인 교수, 김영수 교수, 정구흥 교수 등 젊은 학자들은 명실 공히 국내·외의 관련학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4. 학생의 활동

(1) 학부 학생
생물교육과에 입학하면 서울 근교에 있는 광릉, 운수리, 금남리 등 식물상이 좋은 곳을 찾아 전학과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적어도 이틀을 숙박하면서 통성을 하고 밤을 세우며 주변의 생물을 탐구하고 생물학과 생물교육의 전문가가 되는 법을 배우며 한 식구가 될 것을 다짐한다. 이렇게 1년, 2년, 3년이 지나 4학년이 되면 제주도 한라산을 넘으며 이제까지 배운 것을 육안으로 확인해 본다. 생물교육과 1회 졸업생으로부터 지금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전통을 이어받았다. 한라산을 넘고 뒤를 돌아보면 어떻게 저 높은 산을 무사히 넘을 수가 있었는지 대견스럽고 남은 여정에 자신과 희망이 생긴다. 바로 이것이다. 4년간 배운 생물학을 잘 기억할 수는 없으나 이제 생물 선생님이 된 것을 생각하면 마냥 대견스럽고 자신과 희망이 솟는 것이다.

(2) 석·박사 과정 학생
생물교육과는 생리생태 연구실, 동물발생 연구실, 세포생물 연구실, 유전공학 연구실, 생물교육 연구실 등 다섯 분야로 나누어져 석사, 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자기가 희망하는 분야에 따라 연구를 하고 강의를 듣게 된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저녁 11시 퇴근이 보통이며 일요일도 쉴 수 없다. 이런 구슬 땀의 노력은 외국의 논문집에 게재하는 석사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이 학풍이 모든 석, 박사 과정 학생들의 가슴 속에 확산되는 날 생물교육과의 발전은 무궁할 것이다.

5. 학과 행사

매주 금요일에 한번 씩은 적어도 국내외의 저명한 생물학자나 생물교육학자를 모시고 학과장이 주회하에 세미나나 심포지움이 열린다. 그리고 전 대학원 학생이 참가하는 발표회에 석사와 박사 과정 졸업 예정자들의 논문 발표도 계절별로 개최된다. 해마다 4월과 10월이 되면 각각 소속학회에 그간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6. 졸업생들의 진로

생물교육과는 5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1989년까지 졸업생의 총수는 1,013명에 이른다. 이들중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교사로 409명이고 교감과 교장 선생님이 이에 포함된다. 교육부 산하의 기관에 근무하는 선생님만도 무려 46명에 이르고 학원에도 17명이나 종사하고 있다. 국내의 교수만도 100명이 넘으며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만도 15명이다. 세관, 정계, 언론계, 변호사 등을 합하여 5명이고 의사도 6명이나 된다. 외국의 대학교수를 비롯하여 외국 거주자가 125명이다. 대학원에 재학중인 학생도 3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통계 결과로 보더라도 생물교육과는 설립 목적에 따라 대학을 포함하여 생물학자와 생물 교육자를 양성하는 우리나라 굴지의 학과라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7. 학과의 향후 전망과 비전

인간 세상에서 생명을 탐구하고 그 진리를 교육하는 중, 고등학교와 대학의 스승을 만들어 내는 곳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 교육과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훌륭한 생물 교사와 생물학 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50년의 역사를 가진 유명한 학과이다.

4년간 생물학과 생물교육을 배우고 훌륭한 생물 교사가 된다. 생물을 모르는 사람에게 생물을 가르쳐주는 선생님, 인간 사회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길러 내는 선생님 그 이상의 보람된 직업이 또 있으랴. 매해 2월이 되면 이 나라 생물 선생님이 된 뿌듯한 가슴 속에 희망과 능력을 안겨 주는 생물교육과의 전통을 살려 힘차게 인간 세계로 나가라고, 이제부터 생명의 진리를 탐구하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굳게 맹세하고 이 교문을 나설 때마다 생물교육과는 자라고 발전하고 앞으로도 한없이 뻗어 이 세상 끝까지 길이 빛날 것이다.

(1996년 11월 1일 생물교육과 장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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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on Aug 5, 1996 by Biology Education Lab, SNU
(Last Edited: Aug 9, 1996)

Prof. Young-Soo Kim
Dept. of Biology Education
College of Educa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151-742,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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